환경운동은 1960년대 미국 레이철 카슨이 저술한 침묵의 봄에서 시작됐다. 카슨은 어느 날 숲과 들에 새들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원인을 찾아보았더니 살충제 DDT가 문제였다.
사실에 입각해서 철저하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1962년 발간한 침묵의 봄 이 한 권의 책 덕분에 환경문제가 처음으로 공론화되어 미국 정부에 환경부처가 생겼고 DDT 사용이 금지되었다.
필자 소개
안녕하세요. 환경운동하는 작가에코 eco입니다. 하나뿐인 소중한 지구를 어떻게 하면 더 푸르고 맑게 지속가능하게 하는지 관련 환경기술과 환경활동을 소개하고 있어요. 일상의 크고 작은 실천으로 여러분도 환경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읽다 보면 다양한 환경활동과 환경기술로 지속가능한 지구가 이렇게 가능하구나를 알 수 있어요. 이번 글은 1960년대 첫 환경운동의 기폭제가 된 레이철 카슨(1907~1964)의 침묵의 봄 저서를 통해 DDT폐해와 환경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1960년대의 DDT가 문제였다면 2023년의 문제는 뭘까요.
1. 다이옥신 살충제이자 농약 DDT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디클로로-디페닐-트리글로로에탄)는 유기염소계 살충제이자 농약이다. 유기염소계 통약의 제조과정에서는 독성이 강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생긴다.
DDT는 1874년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합성된 무색무취의 살충제다. 1939년까지 이 물질이 곤충에게 독성물질이라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DDT에 들어있는 다이옥신은 고엽제(defoliant)에도 들어있다. 고엽제는 제초제다. 주성분이 화학물질 염소인 유기염소계 농약이다. 베트남전 당시 1962년 ~ 1971년까지 미군이 밀림에 숨은 베트콩을 색출하고자 밀림의 나뭇잎을 떨구기 위해 살포한 물질이다.
고엽제의 색이 주황색이어서 주황색의 비(Agent Orange)라고 불렀다. 고엽제에 다이옥신이 들어있다. 다이옥신은 고엽제에 일부러 첨가한 물질이 아니라 제조 도중 생긴 침전물(불순물)이다.
엄밀히 말하면 다이옥신은 고엽제에만 들어있는 게 아니다. DDT, BHC, 디엘드린 등 거의 모든 유기염소계 농약의 제조 과정에서 생긴다. ‘염소+탄소+열’이란 세 가지 조건만 갖추면 다이옥신이 생성된다.
다이옥신은 한 가지 물질이 아니어서 다이옥신류라고 해야 맞을 정도로 종류만 해도 2백10여 가지로 매우 많다.
2. 1960년대 미국 DDT남용 짐승들 연쇄죽음과 암 만연
1960년만 해도 화학물질과 환경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일 년에 3,600kg의 DDT가 살포되었다. DDT피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해도 증거가 없다고 패소하는 상황이었다.
https://www.epa.gov/ingredients-used-pesticide-products/ddt-brief-history-and-status
https://www.sciencetimes.co.kr/news/살충제-ddt의-두-얼굴/
DDT 남용으로 각종 곤충이 죽고 새와 짐승이 연쇄적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DDT가 함유한 다이옥신 등 화학물질은 각종 암의 원인으로 작용해 미국에 암이 만연했다.
DDT 생산과 살포는 대기업과 긴밀했다. 그래서 레이철 카슨도 대기업의 소송과 공격이 두려워서 책을 쓰기 위해서는 어렵고 힘든 결단을 내려야 했다.
3. 레이철 카슨의 글쓰기
어느 날 고등학생이 레이철 카슨에게 편지를 보내 글 쓰는 방법을 물었다. 카슨은 친절하게 답장했다. 철학과 명상의 대가들이 말하는 듯한 내용이 감동적이다.
“글의 주제가 항상 글 쓰는 이보다 훨씬 중요해요. 저자는 주제가 가진 진실을 표현하는 도구지요. 작가의 우선적인 임무는 자신의 주제와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주제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주제가 자신의 정신으로 가득 차도록 하세요. 주제가 책임을 떠맡고 지휘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바로 진정한 창작행위가 시작됩니다. 작가가 되는 훈련은 자신의 주제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에 일단 귀 기울이는 것이지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레이철 카슨은 글을 쓸 때마다 본인도 먼저 자료를 완벽하게 수집하여 연구했다. 내면에서 숙성되도록 기다렸다가 주제가 속에서 비로소 우러나올 때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당시의 과학적인 사실과 최신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엇보다 카슨의 인식과 각성이 투영된 그녀의 글은 그 누구의 어떤 글보다 울림과 깊이가 있다.
4. 레이철 카슨의 자료수집과 의회증언
살충제로 인한 끔찍한 실상을 알게 되면서 레이철 카슨은 고뇌했다. 알면서도 입을 다물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밝힐 것인지 깊이 생각했다.
마땅히 항의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죄이며 이것이 사람을 겁쟁이로 만든다는 생각에 자신의 소신대로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레이철 카슨은 당시 여성으로는 매우 드물게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공부를 잘해서 더 연구하고자 존스홉킨스 대학교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학비가 부담되어 그만두고 취직해야 했다. 첫 직장은 미국 정부의 어업국이었다. 말단 연구원 자리가 나서 들어갔고 그 분야 최초의 여성이었다.
어업국의 직장 상사가 레이철 카슨의 재능을 알아보고 책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만 44세에 처음 책을 쓰게 되어 해양생물학 논픽션 ‘바닷바람을 맞으며(Under the Sea Wind)’를 1941년 출간했다.
그 후 ‘우리를 둘러싼 바다(The Sea Around Us)’를 1951년 출판했다. 자연사를 먼저 다루고 해양생물 과학을 다루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이십여 년 오래 봉직한 직장업무를 바탕으로 쓴 이 글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각종 상을 휩쓸며 유명해졌다.
한 직업에서 꾸준히 일하며 쌓은 지식과 트인 안목으로 후속작인 ‘바다의 가장자리(The Edge of The Sea)’을 1955년 출간했다. 후속작까지 광범위한 호응을 받으며 탄탄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위 세 권이 레이철의 바다 3부작이다.
이러던 참에 카슨은 우연히 DDT의 폐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숲과 들에 새소리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알아보니 DDT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50대 초반에 카슨은 암에 걸렸다.
사 년간 암수술을 여러 차례 받아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DDT에 대한 책 침묵의 봄을 탈고했다. 생물학도로서 받은 교육의 힘과 전문지식 그리고 한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끈기와 지혜를 총 동원했다.
탈고하기까지 살충제 등의 화학물질과 환경에 대한 최신정보와 그 근거를 철저히 준비했다. 대규모 자본의 살충제 화학회사들이 줄줄이 소송을 하며 본인을 공격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1962년 침묵의 봄이 출판되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서 여론이 압도적으로 카슨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당시 언론지 타임(TIME)과 화학자들은 카슨이 피해를 편파적으로 과장한다고 맹비난했다.
암투병하며 카슨은 목숨이 다해가는 마지막까지도 의회에 출석해서 살충제이자 농약인 DDT의 폐해를 증언하였다. (참조 미국 EPA, rachelcarson.org, 사이언스타임스)
1960년대 미국에 그 많던 새들이 사라지고 곤충이 사라지며 연쇄적으로 소가 대량으로 죽고 사람에게 암이 만연했다. 원인은 인근 화학 공장에서 나오는 화학물질 DDT 다이옥신 때문이었다.
DDT 화학물질의 위험성과 환경운동은 1962년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어업국 공무원 레이철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에서 시작되었다. 카슨은 암투병 중에 출판했고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의회에 나가서 증언을 했다. 그렇게 해서 미국에 최초로 환경부서가 생기고 DDT는 퇴출되었다.